움베르토 에코 [무엇을 믿을 것인가] 마르티니 추기경과의 서신대화


이책은 1995년 움베르토 에코와 밀라노 추기경 마르티니와의 서신대화 4편을 묶어낸 책이다. 마르티니 추기경은 11개국어에 능통하고, 가톨릭계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인정받는, 개혁파로 불리워지는 측의 유력한 교황후보이기도 했던 성직자다.

(05년 교황선출 때 라칭거 추기경이 베네딕토 16세 교황으로 선출된바 있다.)

한 잡지사의 중개로 시작된 이 서신교환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인류의 화두로 뜨거운 주제 4가지를 담고 있다. 에코가 3번의 질문과 1번의 답변, 마르티니 추기경이 3번의 답변과 1번의 질문을 던졌다.
그냥 책의 목차 그대로를 옮기는 것이 오히려 단순하게 질문과 답변을 요약할 수 있을 듯..

 

첫번째 대화,
에코 - 새로운 묵시록에 대한 세속의 강박관념
마르티니 - 희망은 종말을 <궁극 목적>으로 바꾼다

두번째 대화,
에코 - 인간의 생명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마르티니 -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께서 나누어 주신 것이다.

세번째 대화,
에코 - 카톨릭 교회의 입장에서 본 남자와 여자
마르티니 - 교회는 기다림으로 만족하지 않고, 신비를 찬양한다.

네번째 대화,
마르티니 -  비신앙인은 어디에서 선의 빛을 찾는가?
에코 - 타자가 등장할 때 윤리가 생긴다.

이 고명한 두분, 지()와 성()의 대화는 범인인 나로써는 따라가기 어렵지만,
그래도, 날카로운 에코의 예봉을 유유하게 대응하는 마르티니의 답변을 보면서
이러한 담론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모습에 부러움이 먼저 앞선다.

다만, 마지막 주제.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타인에 대한 헌신을 보이는 것에 대한 신앙인으로써 이해하려고 하는 모습은 다소 안타깝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으면서도, 자기들의 도덕적인 신념을 버리지 않기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비신앙인들의 존재에 대한 이해.

이것이 아마, 유일한 신을 믿는 신앙인들이 갖게되는 이분법적인 한계일런지도. 종교의 자유가 있고, 다신신앙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접근하게 된다면, 기본적으로 지구위에 존재하는 인류는, 다신신앙을 가진 종족이 아닐런지..
안드로메다에 사는 또다른 지적인 존재가 있고, 그들이 우리 지구족을 바라본다면 그들의 입장에서 인류는 다신을 믿는 종족일 것...

 

P.S. 좀 엉뚱한 이론인가?  종교가 없다고 하여, 신앙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하진 못하겠지만, 뭔가 부족한 생각이라고 말하고 싶다.


Marked Lines

 

[요한의 묵시록] 이 성서에 포함되는 과정에서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단 그것이 신약성서의 한 책으로 받아들여졌을 때는, 신약성서 전체의 문맥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마르티니, P.23)

인판스 Infans : 유아를 뜻하는 영어의 <인펀트>, 프랑스어의 <앙팡>, 이탈리아어의 <인판테> 등은 모두 <말을 하지 못하는 자>를 뜻하는 라틴 어 Infans 에서 나왔다.  (각주,P.37)

성 암브로시우스 Ambrosius(337~397)은 마리아의 무원죄(無原罪
)를 주장하여 중세 마리아 숭앙의 시조가 되었다.  (각주, P.45)

수태(受胎)의 순간부터 사실상 새로운 존재가 나타납니다. 새로운 존재라 함은 서로 결합해서 그것을 형성한 두 요소와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그 존재는 일정한 발달과정을 거쳐 아이, 즉 그 <경이로운 것,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자연의 기적>이 됩니다.  (마르티니, P.49)

어느 종교의 지도자들이건 그들이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윤리 문제에 관해서 의견을 표명할 때에, 비신앙인들은 마땅히 그들의 그러한 권리를 인정해야 합니다. ------ 그런데, 그 역(逆)의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에코, P.56)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질료(質料)가 여성의 육체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하고 묻습니다.(아시다시피, 당시에 횡행하던 그노시스 파의 이론에서는 그리스도가 마치 물이 수도관을 통과하듯이 마리아의 육체라는 우연적인 매개수단을 통해 태어났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육체와 관계없이 <불결한 것 innunditia>에 전혀 오염되지 않고 태어났다는 것이지요.)  (에코, P.67)

우리는 타자의 시선과 응답이 없으면 우리가 누구인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살인하고 강간하고 모욕하고 도둑질하는 사람도 예외적인 때에만 그런 짓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남에게 칭찬과 사랑과 존경을 구걸합니다.  (에코, P.106)



2007.1.25


by 노암 | 2008/09/23 09:01 | Book_Life | 트랙백 | 덧글(0)

존 블룸버그 [카르페 디엠]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Carpe diem.

로마의 대시인 호라티우스의 이 말을, 정말 원전에 가깝게 해석하고 인식하여 쓴 글은 근래에 들어 처음 보는 듯 하다.

흔히 "오늘을 즐겨라",  "현재를 즐겨라" 라는 뜻으로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Carpe diem 은 오역으로 빛이 많이 바랜 상황이지만,
(하기야 언어도, 그리고 의미도 살아 변화하는 것이지만....)

89년 나온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의 대사로 유명한 Carpe diem 은 영화에서는 Seize the day 로 정확히 번역했건만, 우리말로는 해석의 여지를 너무 많이 남겼다. (번역이란 것이 사실 또 그러하기도 하지만..)

호라티우스가 남긴 원전에서의 문장은 이렇다.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대학시절 무모하게도 라틴어 3학점을 신청해서, C 를 받았던 어설픈 실력으로 해석하면,

Carpe 는 carpo, 영어로 seize 에 해당하는 움켜쥐다....diem 은  오늘날의 day 즉, 영어 그대로 seize the day 에 해당한다.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은 내일(postero) 은 최소한으로 믿어라...라는 뜻이 되므로, 전체적으로 불확실한 미래를 기대하지 말고, 바로 오늘을 잡아 해내어라...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 맞겠다.

책 <카르페 디엠>의 표지에 나온 카피, "오늘 모든 것을 이루어라" 라는 말은 내가 알고 있는 Carpe diem 의 의미에 그야말로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겠다. 극단적으로는, "내일은 없으니,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살라." 는 말로 바꿀 수 있겠고
 "내일 지구의 멸망이 오더라도,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철학자 스피노자의 말도 바로 Carpe diem 을 실천하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책 <카르페 디엠> 은 사회에서 승승장구하지만, 물샐 틈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잭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늘 '조금만 더 고생하면, 조금만 더 고생하면..' 행복을 즐길 수 있으리란 생각에 현재의 자신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현대인을 대표한다.

시간을 저금하라고 재촉하던 <모모>의 회색인간들 처럼, 자신의 현재의 행복을 유보하고, 마치 적금처럼 미래에 한 몫의 행복을 받을 수 있으리란 생각을 버리고,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랑하는 이들과, 자신을 위한 행복을 위해서..

Carpe diem !!

행복은..... 바로 지금 잡아야 할 일이다.

멈추고 서서 둘러보라던 <관심>의 척 마틴의 말처럼. 급하게 뛰어만 가던 삶은 언젠가 마치 신의 조화처럼 갑작스런 강요된 휴식을 받아야 할런지도.

성공은 가치 중립적이다. 성공이 진정 가치 있는 일이 될 수 있는지 없는 지의 여부는, Carpe diem 을 실천할 수 있는지 없는 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P.S. 너무 상투적인 멜로 드라마를 볼 때 처럼,  <카르페 디엠>은 사고를 당한 가장과 그를 둘러싼 가족들의 극복기를 그려내고 있지만,  매일 보는 멜로물에도 또다시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카르페 디엠> 도 그렇다.  상투적이라고 느끼는 것도 어쩔 수 없고, 그렇다고 알면서도 감동하는 것도 마찬가지.. TV 일일드라마와도 같은 그런 느낌....

 

Marked Lines
 

"행복과 불행은 한 몸을 가진 샴 쌍둥이와 같지. 따라서 서로를 갈라 놓으면 둘 다 죽고 말거야. 그러니 어쩌겠어. 어떻게든 행복을 계속 가꿔나가려면, 불행을 제거하기 보다는, 껴안고 사랑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P.31)


2007.1.23

by 노암 | 2008/09/04 14:15 | Book_Lif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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